록펠러가 얼마나 선행(善行)을 하든 그 부를 쌓기 위해 저지른 악행(惡行)을 갚을 수 없을 것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1870년대 후반 미국 석유시장의 95%를 독점하면서 미국 경제를 주물렀던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를 평가한 말이다. 온갖 편법으로 석유사업의 동맥인 철도를 장악하고, 뇌물과 리베이트로 경쟁자를 물리치며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했던 록펠러.
하지만 말년의 그는 “신(神)에게서 돈을 버는 재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며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
록펠러가 ‘우리 시대에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에서 ‘위대한 기부자’로 재탄생할 무렵,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도 ‘기부왕’으로 거듭났다.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평소 소신대로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했고, 은퇴 후에는 자선사업에 헌신했다.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부자가 자신의 재산을 기부한 사례는 그 뒤에도 있었다. 2006년 6월 재산의 85%(310억 달러)를 기부한 워런 버핏이나 지난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신이 부인과 함께 세운 ‘빌 앤 게이츠 재단’에서 자선사업을 펼치기로 한 빌 게이츠가 대표적이다. 또 고든 무어, 조지 소로스, 엘리 브로드, 월튼 가문, 알프레드 만, 허버트 샌들러, 테드 터너, 마이클 델 등도 2006년 기준 1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위대한 기부’가 있었을까?
1770년대 후반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임상옥은 조선의 인삼독점권을 따내며 당대의 거부(巨富)로 올라섰다. 그는 홍경래의 난(1811년) 때는 방수장으로 의주성을 지키는 데 공을 세웠고, 자신의 재산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 공로를 인정 받아 곽산군수를 거쳐 구성부사로 임명됐다.
반상(班常)의 구분이 확실하던 시대에 상인의 신분으로 관직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빈민구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재산을 내놓았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임상옥은 59세가 되던 1837년에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이후 77세로 죽을 때까지 빈민구제와 시(詩)로 여생을 보냈다. 록펠러와 카네기가 기부와 자선에 나선 것보다 50~60년 빠른 일이다.
임상옥보다 더 앞선 시기에는 제주의 빈민을 구제한 김만덕이 있고, 일제시대에는 평양의 여성 기부왕 백선행이 있었다. 원칙과 사회를 위해 살다간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도 ‘당대의 존경받는 부자’였다.
메릴린치자산운용과 컨설팅회사 캡제미나가 매년 공동으로 발표하는 ‘세계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순수 금융자산(부동산과 자동차 등의 자산을 제외한 것)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소유한 부자가 작년 우리나라에 12만4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부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5.8%로 개인 기부가 83.6%에 달하는 미국과 사정이 크게 다르다. 또 이름난 부자가 아닌 김밥 할머니나 식당 할머니들이 ‘돈이 없어 못 배우는 설움이 없게 해주소’라며 봉투를 내려놓고 황급히 돌아서는 것도 우리 나라만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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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0.3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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